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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를 질질 끌고, 왼손에는 큼직한 쟁반 하나를 받쳐들었다. 쟁반 위에는 뚜껑이 덮인 차 두

잔이 놓여 있었다.소녀는 노인의 신변 가까이 걸어와서, 우선 의자를 노인의 맞은편에 자리잡아

놓았다. 그러고 나서 노인의 신변 가까이에 있는 나무 걸상 하나를 노인의 바로 면전에 옮겨다

놓고, 그 위에 차 두 잔을 내려 놓았다.흘러 내린 앞머리를 가다듬어 올리며 차분히 가라앉은

음성으로 말했다.”할아버지 ! 역시 바깥이 정말 서늘하고 기분이 좋군요!”소녀의 말이 그치는

순간, 느닷없이 찰싹하는 소리가 들렸다.소녀는 가냘프고 예쁜 손으로 자기 목덜미를 탁 친 것

이었다. 그러고는 자지러질 듯한 뾰족한 음성으로 말했다.”에그머니! 요런 깍쟁이 같은 모기란

놈이‥‥‥ 크기도 어지간히 큰 모기인데요!”노인이 성급히 말했다.”얘! 안에 들어가서 부채 좀 가

지고 나온! 밖에는 역시 모기가 굉장히 많구나!””예!”소녀는 가볍게 대답하고 몸을 돌이켜 집안

으로 들어갔다. 얼마 안 되어서 다시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.소세옥은 깜짝 놀랐다.그 소녀가 손

에 들고 나온 부채가 분명히 자기의 물건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.그러고 보면, 방금 부채를

빼앗아 간 사람이 바로 이 소녀라는 데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. 더군다나 모든 일이

노인과 소녀가 계획적으로 꾸며낸 일이라는 점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. 노인은 손님이 왔

다고 했으며, 소녀는 일부러 소세옥의 부채를 가지고 나왔다.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, 이 노인

과 소녀는 무술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다고 판단해야겠지만, 그렇다고 해서 소세옥에 대해서 악

의를 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.소녀는 노인의 등뒤에 다소곳이 고개를 수그리고 얌전하게

섰다. 합죽선을 활짝 펼쳐 가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, 휘적휘적 부채질을 하면서 차분히

가라앉은 앳된 음성으로 말했다.”할아버지 ! 그 술은 참 좋은 술이죠? 향내가 몰칵몰칵 풍기

는 게‥‥‥ 냄새만 맡아도 취할 것 같던데요!”노인은 껄껄껄 너털웃음을 쳤다.”하하하! 얘! 넌

그게 무슨 술인지 알기나 하느냐?”소녀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.”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

? 술도 마실 줄 모르는데‥‥‥‥ 그저, 보통 술보다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죠!”노인이

또 말했다.”보통 술보다 좋은 정도가 아니다! 천하에서 제아무리 좋다는 술도 이 술하고는 비

교가 안 된다! 소위 대운산(大雲山)의 설령주(雪嶺酒)니, 녹매곡(緣梅谷)의 녹매주(綠梅酒)니

따위의 좋다는 술들도 모두 이 술만은 못하다!”소녀는 깜짝 놀랐다는 듯 입을 딱 벌렸다.

“할아버지! 그럼 이 술은 천하에서 제일 가는 명주란 말씀이죠?”노인이 서슴지 않고 말

했다.”천하 제일의 명주라 해도 추호도 손색이 없는 좋은 술이다! 이 할아버지는 이렇

게 많은 나이를 먹도록 이런 좋은 술은 처음 마셔 봤다!””이 술 이름은 워라고 하나요?”