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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위에도 또 다른 차 주전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.연비는 생각했다.’저 주전자에 들어 있는 찻물

은 이 집 계집종들이 무시로 마시는 보통 찻물이겠지? 목이 마른 데 저것이나 좀 마셔 보자!’연

비는 천천히 대청 한 모퉁이로 걸어갔다.차 주전자 뚜껑을 열고 속을 들여다봤다.과연 맑고 깨끗

한 찻물이 한 주전자 가득 들어 있었다. 마침 그 옆에는 찻잔도 두어 개 놓여 있었다. 연비는 아

무것 도 거리낄 것이 없이 차 한 잔을 따라서 벌컥벌컥 단숨에 마셔 버렸다.차 한 잔을 다 마시고

제자리로 되돌아와 앉았을 때, 대청 저편에 있는 또 하나 다른 방문이 살며시 열렸다.도홍이 만면

에 생글생글 간사스런 미소를 띠고, 가냘픈 허리를 갸우뚱갸우뚱, 탐스러운 둔부를 한들한들 휘

두르며 걸어 나왔다.연비를 말끄러미 쳐다보고 쌍끗 웃었다. 그리고 연비 앞에 턱을 치받치고 아

무 말 없이 단정히 섰다.연비는 초조함을 금할 길 없어서 성급히 물었다.”우리 아가씨, 의복을

다 갈아 입으셨나?”도홍은 핼끔핼끔 연비의 얼굴을 쳐다보며, 연방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.

“아마, 거진 다 갈아 입으셨을 거예요!”도홍은 양쪽 입 귀퉁이를 이상하게 삐쭉하며 괴상한 미

소를 입가에 띠고 아주 천진스럽게 물었다.”도련님! 왜, 저쪽 주전자에 담겨 있는 술을 마시셨

죠?”연비는 그것이 술이란 말을 듣자, 표정이 금방 쑥스럽고 어색해졌다.”이 찻물은 너무 뜨거

운 것 같아서, 목이 마른 판인지라 좀 차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어서 그랬는데‥‥‥ 저 주전자

에 담겨 있는 게 술이라구? 그게 정말‥‥‥?”도흥은 일이 제대로 들어맞았다는 듯, 입을 삐죽하

면서 피시시 소리 없이 웃었다.”정말예요! 저건 발성주(發性酒)예요! 그걸 왜 함부로 마시셨다

죠?”연비는 깜짝 놀랐다. 머리끝이 삐쭉하고 하늘로 뻗쳐 올라가는 것 같았다.대뜸 반문했다.

“뭐? 뭐 ? 저게 술인데 ‥‥‥ 그 술이 어찌 됐다구?”도흥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.

“아무 것도 아녜요! 저‥‥‥ 저‥‥‥ 저‥‥‥ 술은 말씀예요! 저‥‥‥‥ 저‥‥‥”연비는 정신이 번쩍 들었

다.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소리를 벌컥 질렀다.”뭐란 말이야? 저 술이 저 ‥‥‥

저 ‥‥‥ 어쨌단 말이지?”도홍은 여전히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띠고 천연스럽게 대꾸했다.

“도련님! 그다지 긴장하실 건 없어요! 저 술은 우리 큰 마나님께서 마시시는 발성주라는 거예

요! 그래서 술냄새도 나지 않죠! 하지만 무슨 주기(酒氣)가 있는 술은 아녜요! 안심하세요!

연비는 대경 실색했다.성급히 반문했다.”어째서 저 술을 발성주라고 하는 거지?”도홍은 시

종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.”저 술은 누구나 한 모금만 마셔도 마음이 싱숭생숭