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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빙여 아가씨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. 손에 잔뜩 움켜잡고 있는 한 자루의 단검에

서는 새파란 광채가 번쩍였다.아가씨는 땅바닥에서 엎치락뒤치락 몸부림을 치며 쉴 새 없이

입으로 처참한 신음 소리를 내뿜고 있는, 온몸에 시뻘건 뱀 가죽 같은 무늬가 얼룩덜룩한

괴상한 사람을 유심히 노려보다가 현도노인을 보고 성급히 물었다.”할아버지! 이 사람은

누구죠?”소세옥은 시골 사람 같은 옷차림을 어수선하게 풀어헤친 데다가, 또 얼굴이 엉망진

창이 되었으니 만빙여 아가씨가 알아볼 수가 없었다.현도노인은 한바탕 껄껄대고 웃었다.

“핫! 핫! 핫! 너는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니?”만빙여 아가씨는 다시 두 눈이 휘둥그래지면

서 강주 아가씨를 힐끗 곁눈질해 봤다. 독살스런 음성으로 소리를 발칵 질렀다.”아가씨는

왜 우는 거지?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야?”강주 아가씨는 처량하게 흐느껴 울기만 하다가

간신히 대답했다.”이 ‥‥‥ 이 ‥‥‥ 이이가 바로 우리 사문의 오라버니!”만빙여 아가씨는 자지

러지게 놀라며 몇 발자국인지 선뜻 뒤로 물러섰다. 얼굴빛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. 극

도의 놀라움에 몸둘 곳을 모르고 허둥지둥하다가 한참만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.”이‥‥‥ 이

청년이 어쩌다가 이런 추악한 꼴이 되었을까?”계집종 비운은 만빙여 아가씨가 자기 주

에게 독살스런 말투로 내뱉듯이 말을 던진 때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. 입을 삐쭉하며

톡 쏴 주었다.”이분은 구두적련이라는 극약의 독기를 쐬었어요! 아가씨는 이분을 찾아다

니셨죠? 이제 눈앞에 보시게 되었으니 시원하시겠군요?”만빙여 아가씨는 워낙 상상도 할

수 없는 커다란 놀라움 앞에 서 있기 때문에, 비운의 안색이나 말투에 정신을 쓸 만한 마

음의 여유가 없었다.”구두적련이라구? 그 무시무시한 사독(蛇毒)을‥‥‥?”만빙여 아가씨는

이렇게 중얼대면서 전신을 오싹 떨었다. 이 극약의 독소를 제거하고 치료할 만한 약이 없

다는 것을, 아가씨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.두 발을 동동 구르며 호통을 쳤다.”어떤 놈이

이분에게 그런 독약을 썼다는 거지?”비운이 또 입을 쫑긋쫑긋하면서 서슴지 않고 대답

했다.”바로 천하제일방의 방주 무영객이죠! 어때요? 아가씨께선 이분을 위해서 원수를 갚

아 보실 용기는 없으신가요?””뭐라구? 아앗!”만빙여 아가씨는 자지러질 듯 소리를 지르며

쏜살같이 자기 할아버지에게로 달려들었다.노인을 얼싸안고 두 발을 동동 구르며 미친

듯이 소리를 질렀다.”전 몰라요! 할아버지! 어떻게 해서든지 이분을 살려 주세요! 구해 주

세요! 이분이 죽어서는 안 돼요!”현도노인은 왼팔을 천천히 쳐들었다. 고집 불통이고 앙칼

지고 독살스런 손주딸의 새카만 머리털을 쓰다듬어 주면서 점잖게 말했다.”얘! 울지 마라!”